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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눔/포토에세이

왜 "쬰쬰"한 시각인가?

지,속에 아주 작은 꽃이 잇지요 오 작은꽃의 앙증마즘이요!! 놀라운신비입니다
길에서 우연히 본 것인데, 꽃
인지 잎인지 구별이 안 됫는데 아마도 꽃이 너무작아 곤충들이못 알아보자 
커다란 잎이 꽃 처럼 위장한 것이 아닌가?  보이내요 -놀라운 신비 입니다.

.왜  "쬰쬰"한 시각인가?

"쬰쬰하다" 라는 말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비속어 수준의 말로 요즘 중,고등 학생들의 "존나" "시바" 라는 입에 달고 사는 말처럼비속어 수준의 말이다. 왜 이런 비속어가 학생들 입에서  거침없이 사용되는 것은 의미 심장한 일이다. 가장 "인간적인 말" 이기 때문이리라.아마도 "쫀쫀하다" 말을 비틀어 사용 하는 것일 것이다.

 "쫀쫀하다"  의 사전적 의미는 긍정적인면과 부정적인면 두가인 것 같다
첫쩨로는 "자세하다. 빈틈없다. 튼실하다' 라는 뜻이고
두 번쩨는 " 치사하다. 통이 크지 않고 작다. 쩨쩨 하다" 라는 뜻이다.

내가 이런 "쫀쫀한" 사람들에 눈을 뜨고 나름대로 그들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한 것은청년기에 읽은 "슈바이쳐 " 전기에 나오는 그의 삶이었다.

 그는 자기의 "생명경외" 삶에 따라 자기방에 들어 온 모기를 우리들 모양  "탁" 하고손 바닥으로  작살 내는 것이 아니라  두 손으로 잘 모셔서 창밖으로  내보낸 것이다.이 "쫀쫀함"이  어린 나에게 충격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파리나 모기 같은 것들을 잡을 때 많은 갈등을 느끼게한다

 결혼후 삶이 "오클로스"(민중, 가난뱅이) 수준이었을 때, 안병무 선생의 "민중신학"에서 주장된 "오크로스' 가 "메시아" 라는 외침이  힘들고 고단한 "실존" 속에서 사는 나에게버팀목이 되어 넘길 수 있었다. 이 "쫀쫀함"을 과연 "가난의실존" 경험 없이  이해 할 수 있을까?

청'중년기에 들어서 "작은것이 아름답다. " 침묵의 봄"  같은 것들이 새로운 경지로 눈뜨게만들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 쫀쫀한" 것들이 얼마나 귀중하며  그것들이 없이는 지구상의 삶이 지속 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되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아닐까?

 중년을 넘은후에 일본의 "신이치"(信一) 교수의 "벌새론" 이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나를 뒤 흔들었다.그는"벌새" 한 마리처럼 인도네시아 숲 밀림과 아마존 밀림을 구하고져일본과, 한국,중국의 "일회용 나무 젓가락" 사용을 중지 할 것을 외치며  그는 그 대용으로목에 걸고 다닐 수 있는  쇠젓가락을 고가에  팔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 "쫀쫀함"을 비웃지 않을까? 그야말로 "웃겨" 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근년에는 " 기후변화와 신학의 재구성" 이라는 작은 책자가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80세나 되는 노 여성신학자가 지구의 심각한 상태를 보고  자기 손자들의  세대를 걱정하며 집필한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21세기 지구 환경에 특히 기독교에 주는 예언서 라고 생각한다.

그  책 내용중에 " 이제는 땅의 신학을 하라" 는 한마디가  가슴을 후려쳤다.사실상 기독교는 근 2000년간 "하늘의 신학"을 해 온 것이다. 그래서 하늘은 귀중한 것이며 땅은 주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하느님의 땅" 인 것을 거의 잊고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땅을 이렇게 훼손 하고도  오히려 "복" 이라고 생각한다. 지구 환경문제에 관한한기독교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80세나되는 할머니가 답답해서 견딜 수 없어 책을 써야만 하는 이 "쫀쫀함" 이 안습하게 한다-

 우주적 신비를 넘어서는 "쫀쫀함"이있다. 이것은 인간이 완전히 이해 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어 그냥 믿을 수밖에 없는 사건으로-물론 제대로 믿지도 못하지만-

기독교 교리의 근본인 "하느님의 사람되심" 사건이다.  그것도 "막장 인간이 되었고,막장의 삶을 살았고, 막장으로 끌난 삶에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깊이 알 수 있을까? 동화적인 이야기로 만약 다른신들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 의 입장을 본다면  얼마나 " 쫀쫀한 " 일인가? 도저히 그 "쫀쫀함"을 이해 할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내가 '쬰쬰한 시각"을 가지려는 이유의 근거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신비함"을 다 이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따라서 살려고 할 때 지구 환경은 달라지리라 생각하고, 믿는다. "믿습니다!" 하는 우렁찬 구호속에 무엇이 있지 않다.오직 "삶" 만이 모든 것을 변화 시킬 수 있다. 누가 보기에도 "쫀쫀한 삶" 속에 있다.

 요즘 나를 뒤흔드는 말이 있다. 가슴이 저려온다. "모친 살해범" 과 "극악무도한 신성모독"이라는 말이다. "모친 살해범" 은 비 기독교적인 말로 지금의 시대는  자기 생명을 탄생시킨 "어머니" 인 지구를 인간이 죽이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어머니"를 죽이는 행위라니, 참담하지 않이한가? 

 또한 "극악무도한 신성모독"이란말은 기독교적인 생각으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땅" 으로 고백하는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땅"을 이렇게 마구 짓밟는 것은 " 극악무도한 신성모독" 이라는 것이다.기독교인인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다.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21세기 문명 생활이 "극악무도한 신성모독" 이라니... 내가 일상 풍족하게 먹고 마시는일과 심지어 하느님을 찬양한다고 드리는 예배도  과도한 에너지 사용으로 오히려 "극악무도한 신성모독'을저지르는 것 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면 숨쉬기가 불편해진다.

 21세기에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것 특히 기독교인 에게 있어서 자명하다.얼마나 "쬰쬰한 시각" 으로 "하느님의 땅"을 보듬어야하고,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이다

그래서 나는 "쬰쬰한 시각" 으로 세상을 보려는 것이다. 미천하나마  사진기를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찹초라고 구박하고 탄압해도 어느틈엔가 풍성한  씨앗을 맺고 잇내요 공존하는 길은 없는 것일가?것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