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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눔/생각나눔

물의 불편한 진실과 정의로운 물

 

새가정 2014년 6월호 기고글

물의 불편한 진실과 정의로운 물

유미호 / 본회 정책실장

수년 전 물의 도시, 생수마을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일본 최대호수 비와호 유역에 있는 ‘하리에’ 마을인데, 마을 구석구석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같은 수원지에서 나온 물이 170가구 107개의 우물과 연결되어 있고, 우물에는 송어 등의 물고기가 살면서 물을 정화합니다. 집안의 물은 식수로 쓰고 남은 물로 빨래와 설거지를 한 후 내보내는데, 옆집으로 흐르는 물은 여전히 물고기가 노닐 만큼 깨끗합니다. 같은 수원지의 물(川)이 집집(端)마다 연결되어 있어 온 마을이 우물을 함께 보호해야 한다는 ‘가바타(川端)’ 전통을 잘 지켰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수원지를 거룩한 곳으로 여기고 늘 한 마음으로 물을 귀하게 사용합니다.

물의 ‘풍요’ 속 ‘빈곤’

그들과 달리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대어 살고 있는 물을 파괴하면서까지 풍요와 편리를 누리기 위한 성장을 꾀합니다. 아직 쓸 수 있는 물이 넉넉하다고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듯이 지구상에 있는 단 1%의 물만이 우리가 쓸 수 있는 물입니다. 게다가 이미 많은 물이 오염되었고, 또 물은 모든 지역에 골고루 있지 않습니다. 개발도상국가의 경우 생활하수의 90%, 산업폐기물의 70% 정도가 처리되지 않은 채 배출되고 있는데, 그가 부메랑 되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물론 물이 넉넉한 지역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마실 물조차 모자라는 곳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무려 10억 명이나 되는 이들이 안전하지 못한 물을 식수로 마시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매년 1500만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수인성 질병으로 앓다가 생명까지 잃고 있습니다.

비싼 ‘물 값’, 불평등한 ‘물 분배’

물은 누구나 거저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값을 치르지 않으면 생명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도 누리기 힘듭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고,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등 세계 어디서고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저마다 치르는 물 값은 다릅니다. 항시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선진국 사람들보다 수십 배나 더 비싼 물 값을 치릅니다.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것이기에 고급식당에서도 ‘생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물에만 가격을 붙일 뿐 무료로 제공하는데, 나이로비 사람들은 하루 생활에 필수적인 물을 하루 벌이의 1/4을 들여야만 구할 수 있습니다.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의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소득의 절반을 물 소비에 사용합니다. 그러니 그들의 가난은 더욱 힘겨워지기만 합니다.

한편 식수 및 생활용수로 이용가능한 물을 다 쓴 도시 지역에서 관개용수를 전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세계적으로 하천이나 지하에서 끌어온 물의 2/3가 관개에 사용되고 있고 식량의 40%가 관개용지에서 재배되고 있는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농촌 지역의 곡물 생산량이 감소되어 식량 수입을 늘리는 나라들이 늘고 있는데, 물 소비의 불균형으로 물 공급량이 줄어들기라도 하면 식량 생산은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물과 에너지, 그리고 기후변화로 물에 잠기는 지구

물이 없으면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고, 에너지가 없으면 정수 및 하수처리는커녕 물을 공급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생명유지에 있어 ‘물과 에너지’는 둘 다 필수적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원이란 관점에서 보면 어쩌면 물이 에너지 이상으로 필수적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은 식수와 생활용수로보다 에너지 생산에 더 많은 양이 쓰이고 있습니다. 일례로 물 1t을 취수하여 수요자에게 공급하는데 약 0.5㎾h의 전기가 필요한데,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화력발전소에서 초당 약 35t, 원자력발전소는 초당 약 50t의 물이 냉각수로 사용됩니다. 화력발전의 원료인 원유와 가스의 채굴 과정에서는 초당 265ℓ의 물이 사용됩니다. 그러니 에너지 위기로 인한 물 부족도 걱정이나, 물 부족이 초래할 에너지 위기도 큰 걱정거리입니다. 세계은행이 2035년까지 세계적으로 에너지 소비량은 35% 증가하고, 에너지 관련 물 소비는 85% 증가할 거란 것도 그 같은 염려라 할 것입니다.

혹자는 지구가 더워지면 빙하가 녹아내려 물이 더 많아질 텐데 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물의 순환주기입니다. 지구 온도가 높아지면 순환주기가 빨라질 것이고, 그러면 순간적으로 많은 물이 증발되어 가뭄을 일으키거나 땅으로 내려 홍수를 일으키는 일이 잦아지기 마련입니다. 이미 홍수와 가뭄이 잦아져 안정적인 물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곳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빙하가 녹아 많아진 물은 해수면을 상승시켜 태평양의 섬나라들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이 같은 기후변화가 물과 에너지의 위기를 더 부추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의 순환을 따라 흐르는 화학물질

2010년 신종플루가 대유행 했을 때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의 성분이 전국의 모든 주요하천에서 검출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 들어간 약 성분이 다시 자연으로 흘러든 것입니다. 모든 의약품의 50~70%는 우리 몸속을 통과한다고 하는데, 만약 거기서 나오는 화학물질과 호르몬 성분이 수돗물에 흘러들어 가기라도 한다면 큰 일일 것입니다. 실제로 캐나다의 수돗물에서는 피임약에 사용되는 에스트로겐이 다량 검출된 적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들 물질의 농도가 자연 상태에서 낮다고 말하지만, 유입되는 양이 워낙 많을 뿐 아니라 하수처리장에서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 수 있어 장기적으로 안전을 장담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미 경구피임약 성분이 수컷 물고기에게 암컷 성징을 나타나게 하고, 항우울제 성분이 조개의 산란행동을 교란하고, 심장병 약의 한 성분이 수생동물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능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자연으로 흘러드는 화학물질 가운데 우리가 살펴할 것은 약 말고도 세제, 화장품, 햇빛차단제, 살충제, 식품의 첨가물 등 수천 가지가 넘습니다. 다량의 항생제와 스테로이드가 나오는 축산농장과 제약회사, 펄프 제지 공장의 폐수들은 그 영향이 큰 만큼, 소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 지속적으로 감사하고 관리 감독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물

“물은 하나님이 공짜로 주신 선물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모두가 자기 몫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물은 순환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연결하니, 각자의 행동이 다른 생명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할 의무도 있습니다. 그러니 주어진 것 이상으로 뽑아 쓰거나 많이 소비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재산으로 소유하거나 이익을 좇아 팔아서도 안 됩니다.” 지금 지구가 물 때문에 심히 앓고 있는 것은 이를 따르지 않아서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로 인해 물이 생명의 힘을 잃었으니, 성서에서 말하는 홍수와 기근뿐 아니라 수질오염이 수많은 생명과 우리의 삶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욕심’을 내려놓고 ‘생존’을 위한 ‘생명의 물’을 깊이 묵상하고, 절약하며 허락받은 범위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려야겠습니다.

<끝>